정조문의 달항아리_고려미술관 탐방
SPECIAL FEATURE
조 신 현 | 사단법인 한국공예가협회 부이사장
는 부두 노동자, 노점상 등의 힘든 삶을 거 쳐 파친코 사업으로 자수성가했지만, 경제 적 성공과는 달리 정체성의 혼란과 문화적 결핍 속에서 늘 “조국에도 일본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의 존재”로 살아가야 했습 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조선인으로서 차별 받고, 조국과는 떨어져 있어 한국의 문화와 미감을 접할 기회조차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달항아리와의 만남은 그에게 단절되었던 문 화적 기억이 되살아나는 사건이었다. 달항아리의 청백색 유약, 자연스러운 비 대칭이 이루는 균형, 여백이 큰 형태는 조 선 특유의 절제된 미감을 담고 있었고, 정 조문에게는 그것이 “조선의 미”이자 “시각 적 정체성의 언어”로 다가왔다. 그는 그날 이후 자신이 잃어가고 있다고 느꼈던 정체 성을 회복하기 위해, 그리고 일본 사회 속에 서 사라져가던 한국 문화를 되찾기 위해 문 화재 수집과 보존이라는 길로 나아가게 되 었다. 그는 일본 각지의 골동품점, 사찰, 옛 창고들을 찾아다니며 한국 유물을 수집했 고, 1969년에는 직접 ‘일본 속의 조선문화’ 라는 계간지를 창간해 조선의 미술과 문화 를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시작한다. 1972년 에는 학자들과 함께 일본 전국을 누비는 ‘한 국 유물 탐방단’을 조직해 더 체계적이고 적 극적인 수집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도 자기, 백자, 고려청자, 불교공예, 민속품, 회 화 등 약 1,700여 점의 방대한 컬렉션이 모
1955년 일본 교토의 오래된 골동품 거리에서 정조문은 우연히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를 마주하게 된다. 가게 주인은 그것이 “이조의 좋은 것” 이라고 설명했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 오면서 마음 깊은 곳에 눌러두고 있던 한국적 미감과 뿌리문화에 대한 감정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강렬한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달항아 리는 당시 “집 한 채 값”에 맞먹는 것이었음에도 정조문은 1년 할부로 그 달항아리를 구입하게 됩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물건 구입이 아니라, 일본 사회 속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있던 자신이 ‘조국인 조선의 미’를 다시 붙잡기 위한 첫 번째 의식적 행동이었다. 그 는 이 경험을 두고 “단 하나의 백자 항아리에 끌려 그렇게 결심하며 그 골동품 집의 문을 연 것이 오늘의 시작이다”라고 회상하는데, 이 말은 그가 평생에 걸쳐 한국의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결국 미술관을 설 립하게 되는 전체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조문은 1918년 경북 예천 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조선인으로 성장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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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MAGAZINE Vol.81 _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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