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공예가협회 제81호 한국공예

이게 되었고, 이는 정조문 개인의 수집 취향을 넘어서 분단 · 전쟁 · 식민 시대를 거치며 사라졌거나 흩어진 한국 문화유산을 되찾아 모은 문화적 복원 작업이었다. 정조문은 점점 더 깊은 확신을 갖게 된다. “수집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유물들을 앞으로의 세대—특히 일본에서 자라는 재일동포의 2세, 3세—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 는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가 점점 잊히고 왜곡되는 현실, 그리고 재 일동포 아이들이 자신들의 뿌리와 정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 며, 유물이 단순히 과거의 물건이 아니라 정체성과 기억을 잇는 다 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본인과 세계인에게 한국 미술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결국 모든 수집품을 공개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한 공 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렇게 1988년, 정조문은 자신의 집 터에 고려미술관(Koryo Museum of Art)을 설립하였다. 고려미술 관은 해외에서 ‘오직 한국 미술만을 위한’ 거의 유일한 사립 미술 관이자, 조선 백자를 비롯한 한국 고미술을 전문적으로 수장한 중 요한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미술관의 출발점이 된 것은 다름 아닌 1955년 그가 1년 할부 로 구입했던 달항아리 한 점이었으며, 이 항아리는 지금도 미술관 컬렉션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정조문의 미술 관 설립은 단순한 문화 사업이 아니라, 식민과 전쟁, 분단을 겪으며 흔들린 한국 문화의 기억을 되살리고, 일본 속에서 재일동포와 한 국 문화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문화적 재생이자 정체성 회복의 실천이었다. 결국 정조문의 여정은 달항아리와의 운명적 만남이 불러온 감동에 서 시작해, 문화유산 수집, 기록, 보존, 그리고 미술관 설립으로 이 어졌으며, 그의 삶 전체는 한 점의 항아리가 일으킨 파동을 따라 한 국의 미와 정체성을 되찾는 긴 여정의 삶이었다. 예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찾고, 한국 문화의 기억을 후대와 세

계에 전하려는 아주 숭고한 움직임이었다는 점 에서 깊은 존경심을 준다. 그리고 달항아리 안에 담긴 조선의 여백, 절제, 비대칭의 미감은 정조문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 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조용하지만 오래가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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