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공예가협회 1대, 13대 이사장 강찬균 구술채록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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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찬 균 | 사단법인 한국공예가협회 고문
2025년 대한민국예술원은 어느덧 5년째를 맞은 ‘대한민 국예술원 구술채록 사업’의 일환으로 앞선 14권에 이어 15권 - 18권에 해당하는 4권의 책을 새롭게 출간했다. 그 중 제 16권은 한국 금속공예 1세대로서 장인이자 교육자, 공예가협회 1대, 13대 이사장을 역임하신 강찬균 고문님 에 관한 것이다. “강찬균 금속공예가는 ‘금속공예 1세대’로 불린다. 전통 과 현대, 해학과 민화풍의 폭넓은 주제와 다양한 소재의 융합, 새로운 기법으로 금속공예의 일가를 이뤘다는 평가 다. 특히 돋을새김 등 조선조와 6.25를 거치면서 맥이 끊 긴 금속공예의 전통기법을 복원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서 울대 학교의 상징이 된 ‘샤’자 정문을 건립했으며, 보신각 새종을 디자인하고 조각하기도 했다. 오롯이 금속공예 외길 인생이었다. 대학에서 강의하고 작 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 외 일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심지어 가족 기념일마저 잊기 일쑤 여서 가족들로부터 ‘바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타고난 재능으로 작품활동에 매진한 덕에 독보적인 최고 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인천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부친이 운영하던 약방 건물이 해방 후 정부에 수용되면서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다. 어머니의 삯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가난 탓에 굴곡진 성장기를 겪었다. 인천 창영초등 학교, 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 대학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미술대회 상을 휩쓸 만큼 재능을 보였으나 가난 탓에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대학 진학 때도 전공을 회화나 공예같은 정통 미술이 아 닌 미학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 때문에 1학년 때
휴학했고, 휴학 기간 동안 각종 미술 공모전에 응모해 상 금을 타면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자 복학하 면서 응용미술과로 과를 옮겼다. 대학 재학 중인 1962년 공보부 주최 제1회 신인예술상전 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66년 상공부 주최 제1회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 대통령상, 1966년 제1회 상공미전 대통령상, 1967년 문화공보부 주최 제17회 국전 문공부 장관상 수상 등 국가 주최 각종 공모전에서 잇달아 수상 해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1971년, 1977년 두 차례의 이탈리아 연수는 금속공예가로 서의 전문성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돋을새 김 등 국내에서 맥이 끊긴 금속공예 전통기법들을 복원했 다. 또한 처음으로 금속공예 기법 교과서를 집필해 서울 대학교의 교육 기반을 마련했다. 70년간 5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개인전 7차례 외 수많은 단체전, 국제교류전을 열었다. 1989년 제1회 목양공예상, 2003년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18년에는 금속공예가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으로 입회하였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34년간 근무했으며 현재 는 명예교수이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구술총서 16 강찬균』 표지에 실린 소개 글 에서 발췌 살펴본 책은 귀한 이야기와 사진 자료로 채워져 있다. 이 기록은 한 예술가의 연대기를 넘어, 한국 공예문화가 일 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어려운 시대를 지나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후대에 전하는 의미 있는 자료 이다. - 작성자 금속공예분과 출판이사 신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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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 MAGAZINE Vol.81 _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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